개념과 이론을 연구에 도입할지 결정하기
일반적으로 질적 연구는 실제 삶의 사건 발생 여부뿐 아니라 그 사건이 갖는 의미에도 초점을 둔다. 전에 글에서는 실제 삶의 사건에 대해 연구 참여자가 부여한 의미가 가장 중요함을 지적하였는데, 질적 연구의 강점 중 하나는 바로 연구자가 부여한 의미에 제한되기보다 연구 참여자가 부여한 의미를 포착할 수 있는 역량이다.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은 사실 ‘개념’을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개념이란 실증적 연구에서의 실제 자료보다는 좀 더 추상적인 생각을 말한다. 아무리 작은 규모의 수집이라 해도, 개념은 연구하고자 하는 사건에 대한 ‘이론’을 대표할 수 있는 논리적 방식으로 수집되기 마련이다. 여러분이 하려는 연구의 일부로 개념과 이론을 어느 정도까지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설계에서의 다섯 번째 선택이다.
개념이 없는 세상?
많은 사람은 질적 연구에 개념이 없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질적 연구에 대해, 이론은 고사하고 개념에 전혀 구애받지 않은 채 사건이나 사람들에 대한 세부 사항만 유창하게 묘사하는 ‘현실에 대한 일지 형식의 해석’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이 고정관념은 또한 질적 연구를 중세 작가의 연대기와 비슷한 것으로 간주하며, 심지어 검시관의 보고서에서나 볼 수 있는 무미건조하게 서술된 객관적 묘사를 간주하기도 한다.
이러한 질적 연구에 대한 고정관념은 훌륭한 질적 연구와는 거리가 있으며, 그것에 따라서도 안 된다. 좋은 질적 연구는 실증적 묘사를 동일하게 포착하되, 어떤 식으로든 추상적 개념과의 연결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제1장 제1절에서 질적 연구하는 일반적인 동기 중 하나가 실제 세계의 맥락에서 사건을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음을 상기해 보라. 여기서 ‘문화’는 ‘집단의 사회적 행동을 주관하는 불문율과 기준에 대한 이론’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추상적 개념인 것은 분명하다.
귀납적 또는 연역적 접근
자세한 실증적 자료와 일련의 개념과 이론을 연결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이 글의 앞부분에 소개했던 귀납적 접근을 떠올려 보자. 귀납적 접근은 연역적 접근과 대조되는 것으로, 이 둘은 자료와 개념 사이를 오가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귀납적 접근은 자료에서부터 개념이 도출되게 하고, 연역적 접근은 개념으로부터 수집되어야 할 관련 자료의 정의가 나오게 한다.
대부분의 질적 연구는 귀납적 접근을 따른다. 그러나 연역적 접근을 따른 것이 잘못은 아니다. 다음에서 이 두 접근에 대한 예시를 살펴보자.
좀 더 귀납적인 접근을 따른 한 연구는 ‘지역사회 범죄 예방’이라는 주제로 시작되었는데, 이 지역에서는 주민 스스로 방범대를 조직하였다. 그 시기에 다른 지역사회에도 많은 방범대가 존재했지만, 이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어서 심지어 각 방범대가 비슷한 유형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대단한 개념화나 이론화 없이 새 연구를 위한 현장 연구가 시작되었다. 현장 연구를 마친 후에야 네 가지의 유용한 방범대 유형이 도출되었다.
이런 유형의 귀납적 접근은 질적 연구에 대해 매우 적합하다. 관련 개념이나 이론이 도출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낙심할 필요는 없다.
이에 비해 연역적 접근은 다른 장점이 있다. 이 접근에서는 관련 개념이 도출되기를 기다리는 대신 어느 정도의 관련 개념을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에, 초기 현장 작업을 할 때 불확실한 것이 너무 많은 데서 오는 고민을 줄여 준다. 그러나 이때의 위험은, 연구하려는 실제 세계에 사건에 대한 생생한 통찰력을 너무 빨리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연역적 접근은 어떤 상황에서는 매우 유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공립학교 3학년 교실에서 일 년 동안 진행된 수학 수업을 녹화한 자료를 확보했다고 가정해 보자. 개념이나 이론을 먼저 세우지 않는다면, 무엇을 유의해서 녹화자료를 봐야 할지 모른 채, 행동 패턴이 발견되어 개념이 도출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기약 없는 긴 시간을 녹화 자료를 보며 보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이전에 명확하게 판별해 둔 개념을 확인하기 위해 이 녹화자료를 사용한다고 가정해 보라. 그 기념에 대해 이미 널리 퍼져 있는 관심 덕분에 출중한 연구를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예) 구소비에트 연방 국가들에서의 사유화에 관한 연구 엘리자베스 던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전환된 폴란드의 한 공장을 연구하였다. 미시간의 거버사는 동유럽의 첫 번째 국영기업 중 하나였다가 나중에 사유화된 한 회사를 인수하여 '알리마-거버'라는 이름의 이유식 회사로 운영하였다. 던의 연구는 1995년부터 1997년 사이의 16개월간 그 회사에서 실시한 참여관찰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녀의 주된 관심사는 노동자 문화의 변화였다.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것"을 바꿔 놓았다. 그녀의 책 전체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카톨릭, 혈연, 젠더 이데올로기뿐 아니라 사회주의와 노조 활동의 경험을 이용"했는지를 탐구한 결과다. 예를 들어, 주요 원칙 중 하나는 "생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윤이 아니라 양심"이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던의 탐색은 중요한 사회경저적, 정치적 변화라는 광범위한 국면에 한 편의 현장연구가 어떻게 삽입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
연역적 접근은 연구의 중요성을 수립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제조회사에 관한 연구는 언뜻 보기에 별로 특별한 것이 없는 장소를 연구한 것 같지만, 그 회사가 동유럽의 첫 번째 국영기업이었다가 소비에트 러시아의 몰락 이후 사유화된 회사 중 하나였기 때문에 중요성이 높이 인정된다(‘구소비에트 연방국에서의 사유화에 관한 연구’ 참고).
앞의 예시들은 귀납적 관점과 연역적 관점에서 ‘질적 연구’와 ‘개념 및 이론’을 긴밀하게 연결하게 할 때의 이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개념이 추상적이기는 하나 반드시 ‘거대 이론’이어야 하는 것은 아님을 명심하라. 따라서 질적 연구를 개념에 연결하는 작업이 거창한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관련 개념과 이론은 여러분의 지식과 연구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이어야 한다.
완전히 이론적인 개념을 위주로 구성되는 질적 연구는 매우 드물게 행해진다.
예를 들어 ‘사회자본’은 최근의 지역사회 연구에서 잘 알려진 이론적 개념이다. Small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집필한 책에서, 연구의 실제 대상이었던 독신가구 단지 대신, 사회자본의 여러 측면을 중심으로 각 장을 구성하였다.
이처럼 개념에 따른 배열을 할 때의 장점과 특정 현장 환경과 그 특징에 초점을 둘 때의 장점에 대해서는 신중한 비교와 평가가 필요하다.
연구 초기에 연구 참여자 피드백을 수렴할지 결정하기
연구 후반부가 되면 여러분은 자료나 연구 결과를 한 명 이상의 연구 참여자(즉, 면담을 한 사람과 협조해 준 사람)에게 보여 주고 피드백을 구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연구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보여 줄 것인가의 문제, 즉 많은 학자가 참여자 확인하라고 부르는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한 대안이자 최근 질적 연구에서 자주 사용되는 방법으로, 연구 참여자 피드백이라는 이슈를 좀 더 일찍, 즉 연구 설계 단계에서 다룰 수 있다. 나중에 어떤 사람들과 어떤 자료를 공유할지 시험 삼아 미리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다음에는 미리 생각해 둔 계획을 연구 참여자 동의서와 연구 계획에 포함한다. 모든 다른 계획과 마찬가지로, 연구를 수행하는 중에 연구의 실제적인 방식이 새로 고안되기도 하고 변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계획을 가지고 시작하는 셈이 된다. 이 점에서 초기 단계에서 연구 참여자의 피드백을 생각해 두는 것은 이 장의 다른 선택과 마찬가지로 설계상의 이슈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른 설계 이슈와 마찬가지로, 연구 참여자의 피드백을 구하는 절차는 무난하게 잘 진행될 수도 있고, 예기하지 못한 장벽에 부딪힐 수도 있다. 다른 설계 이슈들도 마찬가지지만, 원래 세운 계획을 기꺼이 수정하고 지속해서 주의를 기울이는 것 외에 모든 것이 거침없이 잘 진행되게 만들 방법은 없다.
참여자의 피드백이 연구 결과 서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
피드백 과정에 대한 예상이 연구 결과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그러나 피드백 절차는 집필을 다소 섬세하게 만들 것이다. 여러 번은 연구 결과를 정확하게 집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고, 연구 참여자를 사적으로 불필요하게 자극할 만한 단어를 피해야 할 필요성에 민감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자료 수집 시기와 집필을 마치는 시기 간에 일어난 환경 조건의 변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서문에 이를 언급함으로써 시기 문제를 명료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료 수집과 최종 보고서 완료 사이의 기간이 일 년 또는 그 이상임을 고려할 때, 그동안에 상황이 극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상황이 변한 후에 자료를 다시 수집하여 그 결과를 제시하는 등의 추가 작업을 결과보고서의 마무리 부분에 넣어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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