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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질적 연구 - 프로토콜

by 경제 독립군 2023.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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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계의 마지막 선택은 질적 연구의 또 다른 잠재적 딜레마를 반영한다. 연구 프로토콜을 준비하는 것은 연구자가 예상하거나 기대한 대로가 아니라 사람들이 생활하고 보는 방식으로 실제 삶을 포착할 수 있다는 질적 연구의 주요 장점을 약화할 수 있다. 모든 연구 프로토콜에는 연구자의 가치, 기대, 관점이 내포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많은 질적 연구자들이 미리 프로토콜을 만드는 것에 저항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은 초기 현장 작업을 할 때 개방적 태도를 갖고자 노력한다. 같은 이유로, 초기 현장 면담은 면담 대상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노력을 최소화하는 개방형 대화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미 연구 주제를 정했고, 주요 연구 문제도 상세하게 기술하기 시작했으며,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자료 수집 단위를 선택했다면, 프로토콜은 연구 전반과 모든 자료 수집을 생산적인 방식으로 이끄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여전히 현장의 관점을 적절하게 포착하고 새롭게 떠오르는 기대치 않았던 정보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프로토콜이 있으면, 연구 주제와 연구 문제를 지속해서 상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질적 연구를 설계할 때의 여덟 번째 선택은 프로토콜을 미리 준비할지에 대한 것이다. 여러분의 선택은 한쪽 극단에서 다른 쪽 극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것이다. 아마 두 극단 사이의 어느 한 지점을 선택할 것인데, 그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

‘도구’가 아니라 ‘프로토콜’

  ‘프로토콜(protocol)’이라는 용어는 ‘도구(instrument)’라는 고전적 용어보다 좀 더 넓은 범위의 절차와 질문을 일컬을 때 사용된다. 조사연구에 포함되는 폐쇄형 또는 개방형 질문,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연구에 포함된 숫자상의 항목이나 절차 등에서 보듯이 가장 일반화된 형태의 ‘도구’는 고도의 구조화를 특징으로 한다. 대조적으로 가장 구조화된 형태의 프로토콜이라 해도 몇 가지 주제에 대한 서술로만 구성된다. 다음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프로토콜에 서술된 이 주제들은 연구 과정에서 다루어야 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주제들은 도구와 달리, 구두로 묻게 될 구체적인 일련의 질문에 대한 스크립트는 아니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종류의 질적 연구에서 ‘도구’는 별 해당 사항이 없다. 도구를 사용했다면(그것이 개방형 질문 도구라 하더라도), 자신이 질적 연구보다는 조사연구를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이 책의 예시로 사용된 질적 연구 중 면담을 중심으로 실시되었거나 면담만을 실시한 질적 연구의 대부분이 아무런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다(또는 사용했더라도 이에 대해 논의하거나 이를 제시하지 않았다). 면담 자료는 조사연구처럼 느껴지게 하는 미리 정해진 질문-응답 형식(심지어 개방형 질문도 이런 형식이 될 수 있다) 대신 좀 더 대화식으로 수집되었다.

 

  그러므로 질적 연구에서 주요 선택은 도구가 아니라 프로토콜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도구가 아닌 프로토콜은 무엇인가?

사고 틀로서의 프로토콜

  프로토콜은 여러분과 자료 간에 일어나야 하는 상호작용을 빈틈없이 짜 놓은 것이라기보다는 여러분이 착수하려는 광범위한 일련의 행동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프로토콜이 종이 한 장에 적어 놓고 고민을 계속하겠지만, 현장 작업을 하면서 적어 둔 프로토콜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프로토콜은 연구자의 머릿속에 있어야 하며, 이 점에서 프로토콜은 사고 틀의 역할을 한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의사들이 임상에서 하는 질문을 들 수 있다. 환자들이 잘 설명하지 못하는 병에 관해 물어볼 때, 의사들은 환자들과 격식 없이 편안하게 대화하겠지만, 동시에 병의 증상을 확인하기 위한 일련의 정해진 질문들을 할 것이다. 의사들은 질문을 하면서 이 환자에게 해당하는 병이 무엇일지 대략 짐작할 것이다. 이런 진달 과정에서 의사들은 질문을 하는 동시에 메모를 할 수도 있겠지만, 문서로 된 프로토콜을 쥐고 있거나 어떤 질문지에서 질문을 하나씩 차례대로 하는 것이 아님을 주목하라.

 

  탐정 일의 방식도 이와 유사한 예라 할 수 있다. 탐정은 사건을 해결할 때 두 가지 수준의 조사를 한다. 첫째는 증거를 모으는 것이고, 둘째는 이와 동시에 그 사건이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품는 것이다. 사건에 대한 탐정의 예감과 추측은 처음에는 가설에 불과하지만 많은 증거가 수집될수록 견고해지는데, 이러한 예감과 추측을 가능하게 해 주는 질문들이 바로 탐정의 사고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질적 연구에서 프로토콜은 몇 가지 예상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프로토콜은 연구 주제에 대한 많은 질문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러한 질문들은 무엇을 조사해야 할지를 알려 준다. 이러한 광범위한 조사 내용은 연구 전반에 걸쳐 고찰해야 할 쟁점을 보여 준다. 즉, 이 질문들은 수집될 자료에 근거하여 연구자가 답해야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할 사람은 연구자이므로, 이 질문들은 연구자의 모든 자료에 해당하는 것이다. 자료에 일부인 어떤 사람을 면담할 때, 질문지 형태의 도구에서와는 달리 프로토콜에 포함된 질문들은 구어로 하게 될 질문들을 특정 순서에 따라 나열한 것이 아님에 주목하라. 여러분은 마주 앉은 연구 참여자와 나누는 자연스러운 대화의 일부로 구어적 질문을 만들어 내게 한다. 이러한 질문은 프로토콜의 질문을 반영한 것이기는 하겠지만, 구어적 질문의 실제 표현과 순서는 특정 면담 상황에 맞게 조정될 것이다.

 

  둘째, 사람을 면담하든, 자료를 면밀히 조사하든, 관찰하든, 또는 현장의 증거를 검토하든, 프로토콜을 사고의 틀이자 사적인 틀로 삼는 것은 역설적으로 탐정과 질적 연구자가 다양한 자료를 수집할 때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데 유익하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사고 틀이 자료 수집을 치우치게 만드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적절하게 사용되기만 한다면 사고 틀의 존재는 지지하는 증거와 반박하는 증거를 찾을 기회를 만들어 준다. 만약 프로토콜이나 사고 틀이 없다면, 그런 기회는 간과될 것이다. 즉, 프로토콜의 적절한 사용은 더욱 공정한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

 

  셋째, 프로토콜의 질문은 이 글의 앞부분에 논의된 증거의 수렴과 삼각 검증을 위한 노력에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서, 자료 수집 절차의 유동성은 수렴 또는 삼각 검증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데 이러한 기회는 프로토콜이 없었다면 간과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질적 연구의 주요 장점 중 하나는 자료 수집 중에 새로운 것을 발견할 가능성이다. 연구 프로토콜의 사용은 이러한 발견 과정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프로토콜 질문들이 초기의 연구 주제와 연구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나, 자료 수집 과정에서는 열린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앞서 설명한 프로토콜의 세 가지 특징에도 불구하고, 예상하지 못한 증거와 마주쳤을 때 여러분은 ‘상자 밖’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는 자료집 절차를 멈추고 프로토콜에 대해 재고해 보아야 한다. 새로 발견한 사항을 통합하기 위해 이후의 자료 수집 활동 계획을 바꾸고 싶을 수도 있다. 이때 유의할 한 가지는 매우 중요한 것이 새로 발견될 경우, 프로토콜에 대한 재고가 연구 전체와 연구 초기 목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요 연구 문제를 다시 서술하고 초기 문헌을 보완해야 할 수도 있다.

조작적 정의

  연구 프로토콜의 형태로 구성되든 아니든, 수집할 자료를 미리 생각해 두는 이점 중 하나는 자료의 다양한 유형을 규정해 둘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직접 본 사건’과 ‘보지는 못하고 듣기만 한 사건’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싶을 것이다. 연구 주제에 따라 지역사회의 ‘결속력’, 조직의 ‘변화’, 건강의 ‘증진’, 교육 ‘개혁’ 또는 ‘부실한’ 리더십 등과 같은(이 개념들은 그 소수의 예시에 불과하다) 많은 관련 개념들이 나오게 하는데, 이것들은 모두 어느 정도의 조작적 정의의 필요로 할 것이다.

 

  다른 유형의 연구에서는, 이러한 조작적 정의가 연구에 사용된 도구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질적 연구에서는 연구자가 가장 중요한 연구 도구이기 때문에 관심 현상을 일관되게 인식하기 위한 지침을 연구자 스스로 갖출 필요가 있다. 잘 만들어진 연구 프로토콜은 이러한 지침을 위한 단서를 제고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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